“후추커피 파는 데가 여긴가요?”
지난 12∼15일 나흘간 열린 15회 강릉커피축제, 카페 이진리 부스를 찾아온 관람객들은 어떤 맛인지 궁금하다며 줄을 섰다. 가게 이름과 같은 이진리 대표는 크림을 만들 때 통후추를 넣어 하루 이상 숙성하면 후추의 풍미가 크림에 스며드는데, 이 크림을 커피 위에 얹고 다시 그 위에 통후추를 갈아 뿌리면 후추커피가 된다고 설명했다. 주의할 점은 섞지 않고 마시는 것. 그래야 크림의 달달한 맛, 커피의 고소하면서도 쓴 맛, 후추의 매콤함을 다 느낄 수 있기 때문이란다. 후추는 세계 최고 산지인 캄보디아 캄폿산을 쓴다.
올해 커피축제에도 지역의 내로라하는 카페들이 총출동해 관광객과 시민 수만명을 불러 모았다. 주 행사장인 강릉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과 경포 호수광장 주변은 인파로 넘쳐났다. 관람객들은 완연한 가을 날씨를 즐기며 원두볶기 체험을 하고 스페셜티 커피를 시음하면서 축제행사를 만끽했다. 약 250개의 부스가 운영됐는데 커피빵, 과즐을 비롯한 디저트 가게들도 분주하게 돌아갔다. 강릉시 산하 강릉문화재단이 주관하는 행사라 나흘간 부스 이용료는 30만원에 불과했다.
올해도 커피전문가들의 이목은 한국 대표 바리스타를 선발하는 ‘SCA2023코리아 브루어스컵’에 몰렸다. SCA는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국제 바리스타 자격증을 말한다. 올해 축제에서는 이걸 포함해 5개의 커피경연대회가 열렸다. 첫날엔 강릉 사이포니스트 챔피언십과 핸드드립 커피 어워드 행사가 진행됐다. 사이포니스트 대회는 사이폰을 이용해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을 겨룬다. 13일에 열린 다빈치 베버리지 레시픽은 로컬 재료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창작음료 경연장. 다음날 열린 강릉 바리스타 어워드는 라떼아트 실력을 겨루는 대회로, 참가자들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강원특별자치도지사상, 강릉시장상을 놓고 열띤 경쟁을 벌였다. 100명의 바리스타가 100가지 맛을 내는 ‘100인 100미(味) 핸드드립 퍼포먼스’도 시민들의 관심을 모았다.
커피축제에 연륜이 쌓이면서 강릉의 커피 바다는 뉴웨이브로 넘실대고 있다. 강원도 하면 감자, 그 감자를 넣은 커피도 생겨났다. 에스프레소에 감자크림과 커피크림을 넣고, 막 데친 옹심이를 투척하면 ‘감옹(감자옹심이)커피’가 탄생한다. 순두부 라떼는 이름에서 짐작하듯 강릉 대표 음식인 순두부와 커피의 이색 만남이다. 3시간 이상 순두부의 수분을 증발시킨 뒤 크림과 섞는다. 그래서 한 잔을 마시면 속이 든든해지는 느낌이다. 초당옥수수크림라떼, 인절미 아인슈페너, 누룽지 크림라떼, 흑임자 크림라떼 등 파격적이거나 창의적인 커피가 올해도 관광객들의 눈길과 발길을 잡았다.
강릉커피축제는 1995년 지방자치제 시행 후 생겨난 수많은 지역축제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그래서 다른 도시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몇몇 지자체들은 이미 비슷한 축제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부산 서면, 춘천, 경기도 시흥, 전남 고흥 등인데 선두주자인 강릉을 따라잡기는 언감생심이다.
강릉이 커피도시로 입지를 굳힌 데는 스타일과 성향이 아주 다른 두 귀인(貴人) 덕이다. 먼저, 커피 장인으로 불리는 1세대 바리스타 박이추씨다. 2000년 발길 닿는 대로 온 곳이 강릉이었다. 일본 규수 오이타 태생인 그는 1974년 부모와 함께 귀국했지만 뚜렷한 행로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1986년 다시 도쿄로 건너가 주경야독하며 커피를 배우기 시작했다. 호구지책이었다고 그는 솔직하게 말한다. 일본커피연구소의 가라사와 소장을 사사하면서 이게 내 길이 되겠구나 싶었다고 한다. 1년 반 커피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1988년 서울 혜화동에 ‘가배 보헤미안’을 열었다. 그 뒤 안암동으로 옮겨 10여 년간 서울의 핸드드립 커피 전문점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름이 알려지면서 커피를 배우겠다며 찾아오는 이들이 늘어났다. 여느 사람 같으면 이제야 나의 시간이 오는구나, 환호했겠지만 그는 달랐다. 홀연히 서울을 뒤로하고 별 연고도 없는 강릉으로 향했다. 그렇게 온 연곡 바닷가에서 23년째 살고 있다. 보헤미안박이추커피는 2004년 문을 열었고, 올해 73세인 그는 아직도 현역이다. 소금강 계곡물이 바다와 만나는 연곡 언저리에서 매주 목~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손수 핸드드립 커피를 내린다. 올해도 강릉커피축제에 참여한 바리스타의 약 3분의 2가 핸드드립을 주무기로 삼았다. 바리스타라면 역시 이 분야의 고수여야 한다는 말이다.
강릉을 커피 성지로 키운 또 다른 인물은 김용덕(64) 테라로사 창업자다. 20년 남짓 은행원 생활을 접고, 남미와 아프리카를 돌며 질좋은 원두를 찾아 나섰다. 그걸 로스팅해서 국내 카페에 납품하면서 가게를 키웠다. 테라로사는 스타벅스를 비롯한 외국 커피체인점이 장악한 국내 시장에서 그들과 당당하게 맞서는 대표 토종브랜드가 되었다. 그의 열정과 능력을 보여주는 증거다. 테라로사는 2021년 11월 사모펀드 유니슨캐피탈(UCK)에 지분 35%를 700억 원에 팔았다. 올 3월 그는 테라로사 대표 자리를 UCK 사람인 김의열씨에게 넘겨줬다. 사내이사직은 유지하면서 그는 요즘 더 큰 그림에 집중하고 있다. 글로벌시장 진출이다. K-커피를 들고 해외로 나가겠다는 것이다. 첫 해외 매장은 프랑스 파리로 지목했다. 그중에서도 심장부인 루브르박물관 앞이다. 앞서 홍콩, 말레이시아 등에서 러브콜을 받았지만 카페문화의 본고장에 첫 도전장을 내기로 했다. 2002년 테라로사를 창업한 그는 파리에서 먹히면 유럽의 다른 도시로도 확장하겠다고 말한다.
박이추씨는 손목에 통증을 느끼면서도 아직도 뜨거운 물 주전자를 들고 직접 커피를 내린다. 좋아하는 일이기에 행복하다고 말한다. “나는 세상의 유행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서 발전하려면 끊임없이 배워야 합니다.”
김용덕씨는 직원 교육과 복지, 그리고 가치 있는 기업을 만드는데 진력하는 사업가다. 넓은 세상에 눈과 귀를 열고, 무엇이 가치 있는 일인지 계속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고 보니 열정과 배움의 자세가 두 사람의 공통분모로 추출된다. 그 후예들이 지키는 한 강릉의 커피 바다는 저 깊은 곳에서 쉼 없이 용솟음칠 것이다.
컬처랩 심상 대표 simba3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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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복
출처: 강원도민일보 (https://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1210567)